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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층간 소음
    카테고리 없음 2020. 5. 6. 17:30

     

    최근에 위층에 누군가 이사를 왔다.

     

    여자, 어려 보임, 활발한 듯, 학생?

     

    더 많은 정보가 있지만 프라이버시 문제로 그냥 이 정도로만 언급하겠다.

     

    이사 첫날부터 친구들을 불러서 파티를 하는지 온 원룸이 떠나갈 듯 시끄러웠다. 소리뿐이라면 하루 이틀 정도 지나서 적응이 되었지만 더 큰 문제는 천장에서 나는 쿵쿵 거리는 진동 소리이다. 왜 발망치라는 말이 생겨났는지 알겠다.

     


     

     

     

     


     

     

    어쩌다가 한 번씩은 덤벨이라도 떨어뜨린 듯이 엄청나게 큰 소리가 쿵 하고 울린다. 작정하고 뛰어서 뒤꿈치로 찍지 않으면 저런 소리는 나지 않을 텐데??? 참아왔던 분노가 폭발해서 위층으로 올라가 문을 두드리려는데 망설여졌다.

     

     

    '혹시라도 아이들이 즐겁게 노는데 내가 방해를 하는 것은 아닐까?' '그래도 내가 남잔데 이 정도는 참아줘야 하는 것 아닌가. 너무 예민한 것일 수도 있잖아' '요즘 코로나 때문에 밖에도 못 나가서 집에서 노는 것일 텐데 좀 이해해 줘야 하는 부분 아닐까?' 마음을 돌이켜 보려고 했다. 소음이 있다는 것을 알리는 정도만 해야겠다 생각해서 문을 두드렸다.

     

     

    여자아이가 나왔다. 집 안에 있는데 웬 화장을 하고 있지? 물어보니 인터넷 방송을 한다고 한다. 자기 직장이라고 말하는 부분에서 약간 자랑스러운 표정... 그래,,, 일하는 것은 좋은데 왜 하필 우리 집 위인가. 좀만 신경 좀 써달라고 정중하게 부탁하고 밑으로 내려왔다. 귀마개를 꽂고 잠을 청했다.

     

     

    그러나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똑같은 패턴의 연속이었다. 같은 패턴이 계속 반복되니 짜증이 밀려왔다. 가끔씩 친구랑 랜선으로 만나서 킹 오브 파이터 98을 하곤 하는데 같은 패턴으로 계속 당하면 열이 오른다. 패턴을 알아차리고 대응하는 수밖에 없다. 킹 오브는 1:1 대전 격투 게임이라 컨트롤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 그리고 오래 하다 보면 캐릭터 마다의 특성과 친구의 습관적인 패턴을 학습할 수 있으므로 그에 따른 대응 방식을 마련할 수 있다.

     

     

    그런데 층간 소음은 다르다. 이 인간이 어떤 인간인지 파악하는데도 오래 걸릴뿐만 아니라 게임 자체가 밸런스가 맞지 않다. 2층과 1층이라는 공간적인 상하 관계는 그 안에 사는 인간조차 상하관계로 나누어버린다. 1층에 있는 사람은 무조건 선빵을 맞을 수밖에 없는 구조인 것이다.

     

     

    몇 번을 더 올라갔다. 하루는 먹을 것을 주면서 지난번에 예민하게 굴어서 미안하다 하며 햇볕 정책을 써보기도 했다.

     

     

    하지만 바뀌지 않았다. 그녀의 발에는 분명 묠니르 급 망치가 달려있음이 분명하다.

     

     

    최근에 분노가 걷잡을 수없이 일어나서 그 감정 그대로 위층에 찾아가서 따졌다. 그런데 오히려 적반하장. 움직이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소리가 나겠냐는 것이었다. ????? 그럼 내가 들리지도 않는 소리를 가지고 따지러 왔단 말인가?? 자기는 컴퓨터 앞에 앉아만 있는데 그런 소리가 날 리가 없다는 것. 지난번에는 미안하다고 사과해놓고 이번에는 이런 식으로 반응하다니 무엇?? 화가 치밀어 오르는데 그렇다고 싸울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내려왔는데 도저히 잠이 오지 않아서 편의점에서 복숭아 과실주를 한 캔 먹고 와서 12시가 넘어서야 잘 수 있었다.

    다음 날 새벽에 일어나서도 여전히 쿵쿵거리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런데 내 행동양식을 돌이켜보니까 적반하장의 대응을 당한 것도 지나고 나서 이해가 되었다. 아마 위층 사람도 몇 번 올라오니까 자기 딴에는 의식할 수 있는 안에서는 조심조심한다고는 했을 것이다. 그런데 분노가 가득 차서 올라와서 따지고 있는 모습을 보면 자기도 모르게 방어적인 태도가 취해지지 않을까. 라고 내 나름대로 이해를 해본다.

     

     

    그리고 문제는 그녀의 묠니르도 있겠지만, 집의 방음 처리가 제대로 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창문을 열어놓으면 윗집에서 대화하는 소리까지 다 들린다.

     

     

    이런 집에 내가 왜 들어왔느냐? 비싼 동네에 대한 환상이 있었기 때문이다.

     

     

    작년에는 칠곡 구암역 근처에 살았다. 대구 중심가에서 좀 멀리 떨어져 있는 동네로 지상철로 치면 거의 마지막 역 근처였다. 번화가에 가깝긴 했지만 조금만 더 나가면 고속도로를 타고 대구 밖으로도 나갈 수 있는 경계.

    동네에 대학교가 두 곳이 있는데 여름철에는 학생들로 몹시 시끄러웠다. 술 먹고 미친 학생이 상의 탈의를 하고 돌아다니는 모습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 동네 마트 앞에는 무단투기 금지 구역이라고 적혀 있었는데 아무렇지도 않게 쓰레기가 버려져 있었다. 심지어 새벽이나 밤중에 플라스틱 생수통 한 무더기를 그냥 전봇대 밑에 버리는 경우도 있었다. 촬영을 해놨어야 하는데,,,

     

     

    동네의 더러움을 나 혼자 바꾸기는 역부족이겠다 싶어서 깨끗한 동네로 가야겠다 싶었다.

    수성구는 칠곡에 비하면 훨씬 깨끗한 동네이다. 자연 경관도 아름답다.

     

     

    다만 살기 좋은 동네이니만큼 비싼 땅값과 집값의 고통을 감내해야 하는 것 같다. 원룸도 대체로 칠곡 보다 더 비쌌고 좋은 자리가 잘 없었다. 그나마 발품을 여럿 팔아서 좋은 자리에 가격도 비교적 싼 것 같아 들어왔는데 예민한 청각과 환경이 불협화음을 일으키면서 이런 사태를 초래했다. 애초에 비싼 동네에 월세 28만 원으로 얻은 방이 기대 만큼 좋을 리가 없었다. 땅값이 비싼 만큼 단가를 맞추기 위해서 싼 자재로, 싼 가격대의 집을 지었을 것이다. 게다가 구축. 세상에 공짜는 없는 것인가.

     

     

    어린 시절 밤에 몰컴을 할 때 엄마가 귀신 같이 알고 방에 쳐들어오는 경우가 자주 있었다. 덕분에 항상 청각을 열어놓고 엄마가 깨어나는지 안 깨어나는지를 살피는 한편 모니터 앞에서 전투에 몰입하기 위해 레이더를 이중으로 켜놓은 것이었다. 엄마가 일어나면 바로 컴퓨터를 끄고 자는 척을 할 수 있도록,,, 여러번 몰컴을 시도했지만 두 번 정도 외에는 걸린적이 없을 정도로 청각은 기민하게 작동했다.

     

     

    그렇게 키워놓은 청각신경이 살면서 자주 오작동을 일으켜서 고통을 겪는다. 결국 부처님께서 하신 말씀과 같이 '모든 것은 나로부터 나아가 나에게 돌아온다' 라는 말은 진리인 것일까? 어머니의 청각적인 예민성을 살면서 그대로 학습해버린 것. 지금에 와서야 어린 시절에 어머니께서 밤마다 겪어야 했을 고통을 헤아리고 있다. 나도 그 고통을 비슷하게 겪으면서,,,

     

     


     

    집주인에게 여러 번 연락을 시도한 결과, 다행스럽게도 방을 3층으로 옮기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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