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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3.12. 산업단지로 41길 대구은행 건설 현장 내부 정리
    W=F*d 2020. 3. 17. 20:04

    1. 파트너 ㅡ 나 반장님

    2. 주요 일감 - V5 옮기기 등 정리

    3. 주요 사건 - 오전에 파이프 옮기는 아저씨 화나서 하이바 집어던짐. 쉴 땐 같이 쉬자.

    4. 작업 효율성 증대 - 2층 물 빼는 작업 하는데 목수 아저씨가 널빤지로 도구 만들어서 작업 쉬워짐. 근데 그거 보고같이 일하던 다른 아저씨가 굳이 필요 없는데~ 함.

    5. 깨달음 - 겨울에는 건물이 느리게 올라간단다. 콘크리트 양생이 더디다. 얼었다 녹았다 하면 여름에는 더 빠르게 올라감. 생물이 자라는 거랑 비슷하게 느껴진다.


     

     

    3시 55분 현장 종료.

    오늘은 현장에서 참으로 8시 50분경에 잔치국수에 김치를 먹었다. 반장님이 본인이 김치를 가지고 가겠다 하셨는데 이 시국에 김치를 같이 먹어도 되는 것일까 속으로 의심이 올라왔다. 괜찮겠지... 반장님 종교인도 아닌 것 같은데.

    근데 어제 설사를 4번이나 하고 인사불성 상태로 잔 것치고는 아침에 꽤나 멀쩡했다. 그러나 새벽에 일어나 정진하고 사무소에 가려고 챙겨 입은 순간 이 상태로 가서 일을 할 수 있을까 싶어서 잠시 망설이다가 옷을 갈아입고 컴퓨터 앞에 앉았다. 그 순간 인력 소장님 전화가 왔다. 오고 있냐고. 아직 집입니다, 일 있습니까? 있어요, 빨리 와요. 나는 빨리라는 말을 들으면 엄청 기분이 나빠지는 경향이 있었는데 오늘따라 기분이 그렇게 나쁘진 않았다. 그냥 나한테 손해인 것 같으면 기분이 나쁜 것인가. 빨리라는 말 자체는 좋고 나쁨이 없는 것인데. 요즘같이 일이 없을 때 이렇게라도 챙겨주니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어쨌든 옷을 갈아입고 챙겨서 나가려고 했는데 신분증이랑 기초안전보건교육증, 모자를 챙기지 않아서 다시 돌아가서 챙기고 나왔다. 그렇게 뛰어가면서 지각했는데 일 먼저 받아 가면 다른 사람들이 별로 안 좋게 생각하는 거 아닐까 걱정이 되었다.

     


     

     

    오늘 위치는 국가 산안대로 41 부근에 위치한 대구은행 건설 현장이었다. 항상 느끼는 거지만 새벽에 현장에 계신 분들 보면 다들 기분이 별로 안 좋아 보이고 뭔가 불만이 느껴진다. 사무실에 있는 관리자도 아는 사람 보내주지 왜 신규를 또 보냈냐면서 불만을 토했다. 그 말을 듣는데 나도 기분이 조금 안 좋아졌다.

    어쨌든 현장 작업을 하는데 이번에 만난 파트너인 반장님은 목수이다. 일을 굉장히 효율적으로 잘하시고 현장 반장님이 뭐 맡기면 활기찬 목소리로 '예!' 하고 실행한다. 작업 지시가 좀 길고 복잡해도 놓치지 않고 딱딱 실행한다. 야.. 멋있다.

    그렇다고 엄청 깐깐한 스타일인가 하면 그것도 아니다. 일을 부드럽게 무리하지 않게 시킨다. 오히려 의욕이 나고 아드레날린이 솟구쳐서 엄청 빨리해버리고 싶은 나머지 급하게 하려고 하는데 그렇게 급하게 하지 말라고 하신다. 그리고 남들 쉴 때는 쉬어라. 쉬는데 일하면 총 작업반장한테 혼난다 했다. 그렇구나. 건설이라는 게 나 혼자 빨리 나아간다고 일이 되는 게 아니구나.

    반장님 폰에서 전화가 오는데 거북이의 빙고가 나왔다. 힘들다 불평하지만~ 말고~.

     


     

     

    오늘의 종목은 '정리'였다. 자재들을 옮기는 작업인데, 일단 v5라는 녀석을 들어 옮기는 작업부터 시작했다. v5는 한 10~20킬로 정도로 느껴졌다. (초보라 무게나 길이 같은 치수를 감각으로 측정하는데 정확도가 많이 떨어진다. 반장님은 오래 해서인지 나무판 같은 것을 보면 300 혹은 250 등 바로 식별해낸다. 너무 대단해 보이는 것..!)

    아무튼 무슨 온라인 게임이름 같은 v5를 드는 작업. 쉽지 않았다. 기다란 철재를 어깨에 지고 가는데 철재가 신체의 어느 부분에 닿아있느냐에 따라 통증의 정도가 달랐다. 나는 쇄골이 좀 나와있는 편인데, 대학생 때는 여름에 v넥을 입어서 좀 더 이뻐 보이려고 하기도 했다. (? 누구에게? 의도는 그랬으나 결과는 의도와 같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러나 이런 신체 구조가 철골을 드는데 매우 불리하게 작용했다. 각도를 조금만 이상하게 해도 철재가 쇄골을 눌러서 강한 통증이 느껴졌다. 쇄골이 아니더라도 그냥 철재의 무게가 승모를 짓누르는 경우에도 아프다. 구부정한 자세로 했더니 근육이랑 살이 집혀서 더 아팠다. 한번 옮길 때마다 점점 안 아픈 각도와 자세를 연구하면서 조금씩 바꿔봤다. 나중에는 어느 정도 제대로 된 자세를 찾기도 했고 신경이 무뎌지기도 했는지 크게 아프지 않고 무리 없이 해낼 수 있었다.

    어깨 부위 외에도 철골의 차가운 온도 덕분에 손이 시려서 손이 닿지 않는 방법으로 들어보기도 하였으나 무용지물, 그냥 계속 시린 채로 했다. 중간에 너무 시려서 '내가 경북대 화공과 나왔는데 이런 거까지 들고 있어야 돼? 어??' 하는 망상을 피웠다. 힘들면 자주 나도 모르게 이런 망상이 올라온다.

     


     

     

    이후 목재 나르기, 합판 나르기, 앵글 나르기, 아시바(? 용어가 맞나) 나르기 등등 온갖 구조물들을 공간의 가 쪽으로 빼내었다.

    공사현장에서 사용하는 용어 중에는 일본어가 꽤나 많은데 지금은 용어가 기억이 안 난다(피곤하면 언어중추가 먼저 마비되는 듯 생소한 단어를 자주 까먹는다). 아무튼 목재 중에 제일 작은 애, 큰애 중에 얇은 애, 정사각 기둥 모양으로 큰애를 부르는 용어가 다 일본어였는데 이놈들을 왜 한국식으로 바꾸지 않았을까 하는 의아함과 내가 앞장서서 한국말로 부르자는 운동을 한번 해볼까 하는 망상을 잠깐 피웠다.

    점심 전에는 2층에 바닥 물 빼기 작업을 했는데 그냥 슬렁슬렁했다. 오늘은 꿀 빠는구나

     


     

     

    점심으로 출장 뷔페 밥차가 와서 김치, 물김치 등 각종 나물과 매운 콩나물국, 그리고 돼지고기반찬이 나왔다. 작년까지 활발하게 환경운동도 하고 채식주의 모임에도 가서 앞으로 채식 열심히 하겠다 다짐을 했거늘, 막노동하면서 채식을 한다는 것은 참 힘든 일이라는 것을 느꼈다. 0.5초도 비건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고 바로 고기반찬을 많이 많이 집어 들었다. 같이 일하신 반장님이 오히려 소식을 하는 모습에 감격을 하고 또 부끄러움도 느꼈다. 하지만 일을 하고 밥을 먹으니 역시 밥맛이 더 좋았다.

    마지막 작업으로 바닥에 떨어져 있는 크립(클립인 듯)이라는 아이들을 종류별로 분류를 해서 포대에 담는 작업을 했다. 분류하는 작업은 재밌었다. 처음엔 다 똑같아 보였는데 반장님이 차이를 알려주니 차이가 보였다. 크립은 집게 모양으로 맞물리는 부분 두 개가 등을 마주 대고 겹쳐져 있는데 크기가 다른 것과, 중간에 회전이 되는 것과 되지 않는 것으로 종류가 총 세 가지였다. 설명을 들으니 식별할 수가 있었다.

    집에 오는 길 차에서는 반장님께 목수 일을 전문으로 하신지는 얼마나 되었는지 여쭤봤다. 목수 일은 10년 정도 되었고 그전에는 CJ 제일 합섬에 다니다가 퇴직하고 축산 사업을 하시다가 마지막에 돈을 떼이는 등의 고초를 겪어 빚을 지셨다. 그러다가 아는 후배의 지인 중 목수 오야지가 있어서 그분을 통해 목수 일을 본격적으로 하셨고 5개월밖에 되지 않는 경력을 3년으로 말해서 해외(어디라고 말했는지 기억이 안 남ㅠ)도 다녀왔다고,,, 놀 때보다 일을 할 때 사람이랑 더 친해지는 편인데, 일하는 동안 친밀도가 쌓이면 일 끝나고 인생 얘기를 들을 수 있어서 참 좋다.

     


     

     

    결론 : 막노동을 하면서도 가끔은 좀 덜 힘들기도 하고 궁합이 잘 맞는 사람이랑 같이 일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일을 하고 나서도 매우 보람이 있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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